[후기] 홍콩 여행기 1부

2022. 4. 2. 08:00후기/방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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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가기까지

      원래는 이집트나 요르단을 가려고 했다. 여태껏 살며 아프리카나 중동은 방문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집트에선 갑작스레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가뜩이나 아랍어도 못하는데 국제 포로나 미아가 될까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요르단은 페트라 때문에 나만의 로망을 만족시켜줄 여행지였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요르단 공항에서 페트라까지 가는데 비용과 시간, 페트라의 입장료와 숙박비에선 로망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고민에 빠졌다. 어디를 가야할까 고심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와중 내가 마천루를 좋아하니 고층건물이 많은 곳으로 여행지를 떠올렸다. 가까우면서 고층건물이 많은 곳은 홍콩이었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항상 불행은 겹쳐서 오는데 예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언론에서는 금방 해결될 것이라 말했지만 내가 홍콩에서 국내로 돌아오고 꽤 시간이 지난 뒤 마무리되었다. 홍콩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찜통 더위

      여행을 가기 전에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를 읽었다. 그중에서 홍콩에 날씨에 대해 묘사한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홍콩에 있으면 꼭 딤섬(만두)이 되는 것 같아요"라는 표현을 읽었는데 도착하기 전까진 그냥 오버가 심하네 치부했다. 시원한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 내에 있는 안내원에게 길을 물어 홍콩 도심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공항의 스크린 도어가 열리면서 깨달았다. 이게 딤섬이 되는 느낌이구나 싶었다. 숨만 쉬어도 입안과 속이 텁텁 막혔다.

      버스를 타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로 가는 동안은 괜찮았다. 예상대로 더위는 문이 열리자마자 찾아왔다. 홍콩은 여름에 비수기라 표값이 저렴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홍콩은 겨울에 가는 곳이라며 만류했었는데 이미 늦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정류장 앞에 숙소가 있어서 곧장 건물로 들어갔다. 쨍쨍하게 내려쬐는 햇빛을 맞는 것보단 실내가 나았다. 건물에 들어가면 금방 찾을 줄 알았던 숙소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건물이 크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많았고 각기 다른 층으로 향했다. 몹시 난처했다.

    홍콩 반도

      홍콩의 중심 시가지는 크게 두 곳이다. 홍콩 반도와 홍콩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콩 반도(=구룡반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밀집도가 높고 빽빽한 빌딩 숲에 현란한 네온사인이 붙어 있는 곳이다. 내가 느낀 홍콩 반도는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구 시가지 느낌이다. 관광객을 제외한 유동인구를 유심히 살펴보면 홍콩섬에 비해 연령대가 높았다. 요즘은 좀 덜 보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러닝만 입고 다니는 어르신들도 여럿 보았다.

      구 시가지라 그런지 영어를 쓸 줄 아는 현지인이 드물었다. 개인적으로 홍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어도 잘하는 곳이었는데 이곳에 있으면서 내 생각이 많이 깨졌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지만 여행을 가면 항상 현지인들이 많은 곳에서 식사를 즐기는 나로서는 식당에서 애를 먹었다. 당시 노트 기종을 쓰고 있어서 한자를 써서 보여줬으나 홍콩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번체자 사용자라 그랬다.

      홍콩 반도가 홍콩 섬에 비해 크기가 훨씬 크고 이동도 편리해서 숙소를 잡는다면 반도 쪽에 잡는걸 추천한다.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반도쪽에 위치해서 섬 쪽에 잡으면 고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항으로 이동할 때도 반도에서 출발하는 게 훨씬 가까워서 여러모로 반도가 가지는 이점들이 많았다. 또한 현지 생활을 느끼고 싶다면 구도심이다. 홍콩섬은 굉장히 현대적이다.

    홍콩 섬

      홍콩 반도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홍콩섬을 돌았다. 홍콩섬으로 넘어와서 눈에 띄었던 것은 트램이다. 도로의 한가운데를 누비는 트램을 보며 트램에 올랐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에어컨이 없고 창문도 뚫려 있어서 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같이 갔던 친구와 어느 정도 타다가 더위 때문에 맥도널드로 피신했다. 다른 관광객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인지 30분 이상 앉아 있던 팀들이 여럿 있었다.

      홍콩섬의 명물은 피크트램이다. 산 중턱쯤에서부터 홍콩섬의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그게 그렇게 장관이라고 들었다. 이것 때문에 피크트램을 타는 정류장을 찾아 헤맸다. 우여곡절 끝에 피크트램 정류장을 찾았으나 거기에 있던 직원들이 이용하기 어렵다는 식의 말을 했다. 중국어를 못하다 보니 대충 뉘앙스만 이해했다. 다들 내 또래 직원들이었는데 영어를 전혀 못해서 의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나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피크트램은 수리 중이라 사용불가랜다. 꼭 타고 싶었는데 못 타서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또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산봉우리에 올라갈 생각을 했다. 구글링을 해보니 다행히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버스가 있었다. 이번엔 이 버스 정류장을 찾느라 진땀을 흘렸다. 홍콩은 특히나 비대칭 정류장이 많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내가 서 있는 곳에 상행선 정류장이 있다면 맞은편에 하행선 정류장이 있기 마련인데 여긴 도통 그렇질 않다. 물어물어 꼭대기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사람 많을 때 탄 에버랜드행 버스처럼 꽉 차서 올라갔다. 2층 버스를 서서 타는 건 진귀한 광경이었다. 산이 험해서 급경사와 급커브가 심했는데 기사님은 익숙했는지 만원 버스로 드리프트 하며 질주했다. 무서웠다.

      약 40분가량 버스를 타니 도착했다. 살면서 멀미를 한 적이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산 봉우리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나니 금새 괜찮아졌다. 전망대는 꽤 쌀쌀했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야경 때문에 밤에 왔는데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관광객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홍콩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마치 남산타워에서 서울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느낌이었다.

      내려가는 것도 일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산을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어려웠다. 놀이기구를 타듯 엄청나게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1시간가량 대기했다. 막차가 끊길까 봐 걱정했다. 내가 타는 순번이 왔다. 버스가 아닌 웬 봉고트럭이 왔다. 창문을 보니 타려고 했던 버스 번호가 붙어 있었다. 8명 정도 탄 거 같은데 내려갈 땐 올라올 때 보다 더 스피디하게 내려왔다. 15분 만에 내려왔다. 차에서 내려 땅에 다리가 닿는 순간 심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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