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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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3부
신보기(신병보호기간) 지난주와 같이 이번에도 행정반(RSO:ROKA Staff Office) 옆에 딸려 있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일과를 시작했다. 이미 부대 책장에 꽂혀 있는 진중문고의 도서들은 읽었기에 일기장을 챙겼다. 많은 물건들 중에 일기장을 챙긴건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다. 책을 보기만 하면 잠이 쏟아져 내려서 필히 뭐라도 써야했다. 사무실에 박혀 일기를 쓰니 시간도 잘가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무실에서 개인용무를 하고 있던와중 내 맞선임인 일병이 나를 찾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찾은 이유는 다름 아닌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였다. 나를 처음 보자마자 최대한 늦게 출근하라고 했었는데 아마도 우리 사무실 내의 최고참이 부재중이라서 날 필요로 하는 눈..
2022.08.21 -
[자대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2부
첫 주말 드디어 자대에서 첫 주말을 맞이했다. 아직 신병 보호기간이기 때문에 어디든 선임과 함께 돌아다녀야 한다. 우리 부서 선임은 아니지만 다른 선임이 나를 아침부터 인솔했다. 디팩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미군PX에 들었다. 배럭에서 꽤나 가까웠다. PX에 도착해보니 푸드코트와 군장점, 한국 기념품점, 미용실 정도가 있었다. 푸드코트엔 파파이스, 버거킹, 아비스,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점들이 있었다. PX에 들어가기 전에 한바퀴 크게 돌고 PX에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육군 PX는 많이 다녀봤지만 미군PX는 생전 처음이기에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모습은 마치 캐나다에서 봤던 월마트와 흡사했다. 제품을 배치해 놓는 것도 그렇고 매장 전등의 불빛도 비슷했다. 매장을 돌아보며 가전과 전자기기가 국내에 비해 엄..
2022.08.14 -
[자대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1부
자대 첫날 처음으로 배럭(Barrack;생활관)에서 아침을 맞았다. 논산에서 나를 깨우던 알람도 KTA에서 나를 깨워주던 불침번의 외침도 없어서 일어나기 버거웠다. 오늘은 외부 병원에 가야 해서 일찍 일어났다. 공복에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침 식사는 일부러 걸렀다. 1층에서 선임과 약속된 시간에 만났고 지원대장님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휴대폰도 없기에 당연히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줄 알았으나 알아서 가라고 하셔서 어안이 벙벙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어제 미리 부모님에게 부대 앞까지 오라고 할걸 그랬다. 벙쪄 있는 동안, 지원대장님이 부대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넋이 나가 듣고 있는데 갑자기 병원이 그리 멀지 않으니 데려다주시겠다고 했다. 처음엔 본인 휴가라며 나 때문..
2022.08.07 -
[KTA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5부
KTA 수료주 차 ELT(English Language Training) 시험 때문에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잤다. 논산훈련소 때에 비해 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 일어나서 PT를 하고 숙소에서 샤워를 한 뒤에 밥을 아침을 먹었다. 방 검사(Room Inspection)을 마치고 ELT 2차 시험을 보러갔다. 시험은 정해진 시간대로 0805에 시작했다. 시작후 약 10여분간 시험감독이 끊임 없이 말을 걸어서 혼란스러웠다. "이런걸 떨어지고도 사람이냐" 라는둥 계속해서 부정적인 말을 쏟아냈다. 꾸욱 참고 시험을 보는데 솔직히 듣기 평가 때도 그러니 화가났다. 듣기 평가도 계속 임의로 넘기고 중요한 순간에 워드작업을 하며 소음을 만들었다. 어쨌든 시험은 끝났다. 시험지를 제출하는데 한 훈련병에게 버럭 버..
2022.07.31 -
[KTA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4부
KTA 3주 차 지난주에 예약한 평택 성모병원에 방문하기 위해 아침밥을 거르고 교관실(Instuctor room)에서 기다렸다. 지난주와 달리 병원까지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서 부대에서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찰과 CT 촬영 결과 좌측 콩팥에 길이 1.2cm, 너비는 0.9cm짜리인 돌이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돌의 크기가 워낙 커서 가급적 빨리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들었다. 그동안 왼쪽 옆구리가 아팠는데 이 녀석이 원인 것 같다. 혹시 몰라 CD로 CT 사진을 받았다. 소변검사도 들었는데 혈액 검출량이 many라고 나온 걸 보여줬다. 부대로 복귀하여 내 담당 한국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듣더니 지금 수술하면 육군으로 바로 원복(원상복귀)라고 말했다. 그래서 약먹고 무조건 PT 시험을 다 치르고..
2022.07.18 -
[KTA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3부
KTA 2주 차 KTA에서의 처음으로 월요일을 맞이했다. 늘 그렇듯 새벽 4시에 기상해 아침 PT 나갈 채비를 했다. 강당에서 또 행사가 있는지 PT집합을 밖에서 했다. 운동은 안 하고 내일 있을 2-2-2 Assessment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겨울 야외는 유난히 추워서 그런지 남극의 펭귄 마냥 훈련병들이 서로 바싹 붙어 있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살을 애는듯한 추위가 힘들었다.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KTA에서 보는 첫눈이라 기분이 묘했다. 숙소로 돌아와 군복으로 환복을 하려는데 갑자기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 날이 너무 추워져서 플리스를 입고 나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안된다고 그래서 맨몸으로 뛰쳐나갔다. 모든 훈련병들이 밖으로 모이는데 30분 정도 걸렸다. 미군 교관한테 엄청나게 깨졌다...
2022.07.10 -
[KTA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2부
KTA 1주 차 날이 너무 추워서 새벽 3시에 깼다.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다시 덮고 잤다. 분대장 훈련병이라서 남들보다 10분 정도 빨리 기상했다. 4시 30분에 분대원들을 깨우고 먼저 집합 장소로 향했다. 인원 점검이 끝나고 바로 강당에서 PT를 시작했다. 논산 훈련소 때와 달리 모든 자세들이 영어로 나왔기 때문에 정신없이 했다. 잘 안 들려서 뭘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눈치껏 옆에 있는 훈련병들을 참고하면서 운동을 했다. 겨울인데도 온몸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확실히 미군 체조가 국군보단 빡센 동작들이 많아서 그런 듯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숙소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내려왔다. 처음으로 디팩(dining-FACility)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미군의 제식과 군가를 부르며 향했다. 논산에서 ..
2022.07.03 -
[KTA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1부
배출일 6주간의 논산훈련소 생활이 막을 내렸다. 기다리던 KTA(KATUSA Training Academy)로 이동한다. 오전부터 9중대 전부가 바빴다. 비카투사 인원인 4소대 인원들도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해서 우리와 함께 각자의 생활관을 정리했다. 4소대 인원들은 우리보다 먼저 배출되었고 가는 걸 보며 잠깐 인사를 나눴다. 우리보다 1시간 먼저 출발했다. 그동안 얼굴을 보며 지내서 그런지 서로서로 좋은 데 가라고 인사를 하며 배웅을 했다. 도플백에 정리한 짐들을 챙겼다. 받은 게 별로 없었던 거 같은데 정리하다 보니 금세 도플 백이 꽉 찼다. 내 몸만 해진 가방을 등에 매고 생활관 밖에서 대기했다. 대기하는 동안 도시락을 받았다. 우리가 점심을 못 먹는다고 하니 부대 쪽에서 준비해줬다고 들었다...
2022.06.27 -
[프롤로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3부
고민 원래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고민도 많다. 입대 직전에는 유독 더 그랬다. 전역을 하면 어떻게 살게 될지 아니면 가기 전에 뭔가를 더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내 롤모델인 교수님을 찾아뵈며 개인적인 생각과 대학원 상담을 하기도 하고 예전에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사장님을 만나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몇 달간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들를 때마다 디자이너분이 머리에 땜빵이 생겼단 말씀을 했다. 처음에는 탈모 샴푸 영업 때문에 그러려니 했으나 3개월 이상 같은 말을 들으니 느낌이 싸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피부과에 들렀는데 원형탈모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아마도 스트레스 성인 거 같다며 부디 관리를 잘하라는 말을 남겼다. 내가 이 나이에 ..
2022.05.22 -
[프롤로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2부
합격 어학성적을 점수대 구간별로 나눠서 인원 선발을 한다고 들었다. 토익을 기준으로 예를 들면 780~850점, 850점~900점, 900점~950점 등으로 말이다. 고득점을 할수록 경쟁자들이 줄어드니 적어도 900점은 되어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원서를 넣을 때까지 원하던 900점은 넘기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은 갈수록 커졌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롯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발표는 11월이었기에 남은 두 달 동안 일상생활을 하며 지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합격률이 그다지 높지 않으니까 지금부터라도 군대에 지원하라고 들었다. 다행히도 대학생 신분이라서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그날도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였다.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그토..
2022.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