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8. 08:00ㆍ카투사 일기
KTA 3주 차
지난주에 예약한 평택 성모병원에 방문하기 위해 아침밥을 거르고 교관실(Instuctor room)에서 기다렸다. 지난주와 달리 병원까지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서 부대에서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찰과 CT 촬영 결과 좌측 콩팥에 길이 1.2cm, 너비는 0.9cm짜리인 돌이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돌의 크기가 워낙 커서 가급적 빨리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들었다. 그동안 왼쪽 옆구리가 아팠는데 이 녀석이 원인 것 같다. 혹시 몰라 CD로 CT 사진을 받았다. 소변검사도 들었는데 혈액 검출량이 many라고 나온 걸 보여줬다.
부대로 복귀하여 내 담당 한국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듣더니 지금 수술하면 육군으로 바로 원복(원상복귀)라고 말했다. 그래서 약먹고 무조건 PT 시험을 다 치르고, 통과까지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부디 내 콩팥이 잘 버텨주길 기도하며 수업을 들으러 갔다. 오늘부턴 WIT 수업이 시작되어서 강의를 들으러 갔다. 지도를 읽는 방법인 독도법에 대하여 영어로 강의를 들었다. 이번 강의는 한국인 강사분이 아닌 미군 교관이 진행했다. 처음 보는 단어들 투성이라서 주변에 있는 동기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WIT도 시험도 통과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이제 PT 시험까지 얼마 안남아서 긴장된다. 병원에서 받은 신장 약을 먹지 않으면 계속해서 통증이 수반된다. 부디 시험날 만큼은 정상적으로 달려서 마무리하고 싶길 바라고 기도한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방 검사(Room Insepction)를 했다. 미군 교관들이 들어와서 방을 점검을 하는 동안 레고처럼 온몸을 뻣뻣하게 하는데 신경을 집중한다. 무탈히 지나갔고 룸 인스펙션만 끝나면 온몸에 힘이 빠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얼마 가지 않아 갑자기 한국군 중사가 나를 찾았다. 군의관이 보자고 했다며 군의관실로 향했다. 군의관이 병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단한 질문을 하고, 수술은 자대배치 이후에 하는 게 좋을 거 같다며 가능하다면 참고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남겼다. 군의관과의 말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불이 꺼져 있어서 당황했다. 인원들이 어디로 갔나 찾다가 밖에서 제식훈련을 하는 걸 보고 나도 함께했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날이 따뜻해서 땀을 많이 흘렸다.
저녁식사 이후 고대하던 모집병 면접이 강당에서 시작했다. 우선 각 부대별로 본인들의 부대를 소개했다. 대략 10명의 간부들이 돌아가며 자기 부대에 대한 소개를 했다. 말로만 하는 간부도 있었고 아예 동영상을 만들어온 부대도 있었다. 여러 간부들의 소개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탱고부대와 미군 군종(채플린) 간부의 소개였다. 탱고부대는 너무 멋있어서 인상 깊었고 채플린은 영어인데도 불구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리듬 때문에 인상 깊었다.
많은 부대들이 있었지만 난 "미 2사단 행정병"에 지원했다. 면접 서류를 작성하는데 영어-한국어, 한국어-영어로 번역하는 시험을 봤다. 그리곤 면접관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면접은 약 10분 가량 진행되었다. 면접관으로 참석한 사람은 아까 강당에서 부대 소개를 했던 미군 지휘관과 내가 해당 부대로 전입 가게 된다면 업무를 가르쳐 줄 선임병이었다. 가슴에 있는 4개의 작대기가 그의 상황을 짐작케 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말을 떠듬거리면서 했다. 아무래도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PT 시험 전날이라 그런지 컨디션 조절을 해야한다며 바로 오전 PT를 진행하지 않고 내일 시험에 대한 여러 주의사항들에 대해 알려줬다. 지난번에 봤던 2-2-2 Assement와 같이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에 대한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끝나고 PT를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운동 이후 스트레칭을 했는데 의외로 뭉쳤던 근육들이 잘 풀려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가 숙소로 돌아와 조금 휴식을 취했다. 또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 시간 동안 라디오 송수신 방법과 구급법에 대해 학습했다. 미국 군인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비로 송수신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작동하지 않을 것처럼 생긴 고물 덩어리가 미군 교관의 말대로 건드니 작동하는 걸 보고 진짜 신기했다. 수업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실수 있는데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나올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만 졸린 줄 알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놓고 자는 녀석도 있었고 다양했다. 다들 피곤한가 보다.
카투사 훈련소(KTA)에서 지내며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덕분에 숙소 벽장 속에서 우비를 꺼냈다. 방이 너무 추워서 입고 자던 우비였는데 실제로 입어보게 될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밖을 이동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우비를 챙겨서 돌아다녔다. 실제로 입는 건 처음이었는데 국군 우비와 달리 실용적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우의는 판초처럼 생겼는데 미군의 우의는 바람막이처럼 생겼다. 그래서 입고 벗기도 편하고 관리도 용이하다. 우리나라도 이런 걸 적용했으면 한다.
드디어 1차 PT 시험날이 밝았다. 오늘 시험이 있기에 어제 저녁에 일부러 보충 PT를 하지 않았다. 유급되어 남아 있는 기수들한테 팁을 물어봤더니 조금 일찍 일어나는 게 좋다고 들었다. 기상은 평소보다 1시간 더 빠른 3시에 일어났다. 지난주 2-2-2 Assement 때는 평소처럼 일어나 시험을 봤는데 그때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빠른 기상을 택했다. 깨자마자 몸을 풀어주기 위해 온수로 샤워를 했다. 온수가 잘 나와서 오래간만에 따뜻하게 씻을 수 있었다. 몸의 피로도 한결 풀렸다. 옷을 입고 전날 D-FAC(디팩;식당)에서 몰래 가져온 쿠키와 김을 먹었다.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것 같아서 조금만 먹었다. 곧바로 진통제 2개와 감기약을 먹었다. 기다리는 동안 추가적인 운동은 더 하지 않고 팔과 다리만 가볍게 풀어줬다. 얼마 뒤에 일어난 룸메이트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시간에 맞춰서 강당으로 향했다. 인원들 모두 강당에 앉아 있었고 내 번호에 맞춰 자리를 찾아갔다. 줄 맨 앞에는 카운팅을 해주는 교관이 앉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런 경우엔 횟수를 잘 세주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예정된 시간대로 측정이 시작되었다. 내 위치가 중간쯤이라 앞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인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계속 혼잣말로 할 수 있다를 계속 되뇌었다. 심장이 파도처럼 계속 요동쳤다.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고 정신없이 팔 굽혀 펴기를 했다. 31개만 하면 통과인데 28개부터 죽을 맛이었다. 어떻게든 32회는 채우고 33회째 팔에 힘이 풀리며 무너졌다. 이게 안되어서 3주 내내 스트레스였는데 결국 해내서 남들 몰래 눈물을 훔쳤다.
팔굽혀펴기 이후로 윗몸일으키기를 측정했다. 43회만 하면 통과지만 지난번 중간 평가 때 50회를 했기에 이를 꼭 넘기고 싶었다. 열심히 개수를 채우던 도중 45회쯤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났다. 이미 통과 기준을 넘었기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내 기록을 넘기고 싶어서 쥐어짜면서 움직였다.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꾸역꾸역 하다 보니 51회까지 할 수 있었다. 하나 더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 멈춰야만 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가장 자신있던 종목인 2마일런을 시작했다. 시간은 5시 55분 예정대로 뛰기 시작했다. 아까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서 그런지 평소보다 뛰는 게 어려웠다. 며칠 전부터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기로 약속한 논산 동기와 함께 달리기를 이어갔다. 오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미리 말을 했더니 동기가 나 대신 앞에서 뛰었다. 처음 뛰는 코스라서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고 앞에 있는 훈련병들 뒤통수만 보고 냅다 뛰었다. 어떻게든 1마일 반환점에 도착했다. 문제는 여길 지나고 시작되었다.
갑작스레 왼쪽 배에 통증이 찾아왔다. 너무 아파서 걷고 싶었지만 절대로 멈추지 않고 뛰어야 원하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기에 이 악물고 뛰었다. 그러다가도 힘들어서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내 옆에 아픈 몸을 이끌고 절뚝 꺼리며 뛰던 논산 동기를 봤다.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었다. 초행길이라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그냥 달렸다. 그렇게 뛰다 보니 출발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다리에 계속 쥐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스플린트를 했다. 기록은 15분 15초로 논산 때 보다 못 달렸지만 통과다. 같이 들어온 동기와 껴안고 울었다.
3주간 나를 괴롭혔던 체력측정을 무사히 통과했다. 체력측정 결과 때문에 카투사 인원들은 모두 희비가 갈렸다. 통과를 못한 인원들은 마지막 2차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 우선 한시름 덜었기에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평소대로 또 강의를 들었다. 체측을 하고 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수업 내내 졸려서 곤욕이었다. 내일은 WIT 시험이 있는데 걱정이다. 지난주에 ELT 시험을 떨어졌기에 반드시 통과하려고 한다. 정말이지 산 넘어 산이다.
룸메이트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직 PT에 늦진 않았지만 시간이 15분밖에 안 남아서 다급하게 장구류들을 챙겨 강당으로 향했다. 어제 밤늦게까지 WIT 시험공부를 해서 아침에 불침번들이 깨우는 소리를 못 들었다. PT 시험을 통과해서 그런지 오전에 있는 PT가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체조를 하는데 간간히 느껴지는 왼쪽 복통에 힘들었다. 달릴 때도 너무 무리해서 뛰지 않았다. 만약 열외 되면 또 사람들의 눈초리와 한국군 중사들이 어떤 잔소리를 할지 모르겠어서 최대한 설렁설렁 훈련을 했다.
오전 PT를 마무리하고 식사 후에 강의실로 돌아왔다. 미군 교관이 조금 뒤에 진행될 WIT 시험을 45분간 리뷰해줬다. 이다음에 바로 시험이 진행되었다. 총 50문제가 나왔고 지난주에 본 ELT 시험과 달리 OMR 카드로 시험을 봤다. 애매한 게 13개가 나와서 큰일 났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다른걸 다 맞추면 무리 없이 통과긴 하지만 고민에 빠졌다. 아무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시험지를 제출했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다른 인원들을 기다리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시험 점수는 점심시간 이후에 공개되었다. 다행히도 우리 소대원들 전원 통과였다. 이제 시험 하나만 준비하면 되겠거니 싶었다. 그나마 좀 마음이 놓인다. 이후에는 야외에서 또 제식훈련을 진행했다. 밖에서 한참 제식훈련을 하다가 사격훈련을 하러 이동했다. 스크린 사격을 했는데 앞에 있는 분대원들을 기다리느라 40분간 대기했다. 사로가 10개라서 한 번에 10명씩 연습할 수 있었다. 스크린 사격은 처음이었는데 실제로 총을 쏘는 것처럼 반동도 있었어 실제 사격과 차이가 없었다. 사격 시간 이후로 저녁을 먹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KTA에서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ELT 때문에 교실로 향했다. 재시험자는 리뷰를 해준대서 갔는데 각자 알아서 자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니까 할 말은 없었다. 공부를 한 시간 정도 하니 갑자기 미군 교관이 들어와서는 머리를 잘라야 한다며 모두 인솔했다. 훈련소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머리를 깎나 싶었다. 이번에 하는 머리는 스시컷(Sushi-Cut)이라고 불렀다. 옆과 머리의 뒤만 이발기로 쳐서 초밥 같은 모양이 되었다.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다행이었다.
머리를 밀고 다시 교실로 돌아와 공부를 했다. 점심시간이 돼서 밥을 먹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이젠 숙소로 돌아가라고 해서 올라왔다. 방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갑자기 집합 명령이 떨어져서 옷을 입고 강당으로 향했다. 가보니 기회균등(EO;Equal Opportuinity) 교육 때문에 그랬다. 진행은 상병인 카투사가 설명을 했다. 약 30분 정도 하고 질문들을 많이 받아줬다. 피곤해 죽겠는데 다들 궁금한 게 많은지 질문만 20개를 했다. 끝나고 저녁까지 일정이 없어서 방에 박혀서 공부만 했다. 이번 시험도 무탈히 통과하여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내고 싶다.
아침밥을 먹고 방에서 공부를 했다. 이제 유급 인원과 통과인원이 다 확정되어서 희비가 엇갈렸다. 아직 결과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기에 남들 노는 시간에 계속 공부를 했다. 분대원들도 배려해줘서 다른 방에 모여서 놀았다. 정말 놀고 싶었는데 꾹 참아가며 공부를 했다. 점심을 먹고 교회에 가려는데 강당 집합하라고 해서 잠깐 모였다. 지난번에 제출한 자격증들을 반납받았다. 이후 교회에 갈 사람들은 교회로 향했다. 자격증을 손에 쥔 채로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교회에 매번 한국인 목사님만 계셨는데 이번에 미군 목사분이 오셔서 말씀을 해줬다. 미군 목사분이 우리에게 우리는 모두 걸작품이니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말을 하셨다. 교회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세례명과 영문으로 된 성경책을 받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 저녁시간 전까지 공부를 하고 밥을 먹었다. 오늘이 KTA에서의 마지막 주말이라 그런지 오랜 시간 동안 통화할 수 있었다. 40분 정도 통화를 했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있을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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