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A편] 안정리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5부

2022. 7. 31. 08:00카투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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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A 수료주 차

      ELT(English Language Training) 시험 때문에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잤다. 논산훈련소 때에 비해 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 일어나서 PT를 하고 숙소에서 샤워를 한 뒤에 밥을 아침을 먹었다. 방 검사(Room Inspection)을 마치고 ELT 2차 시험을 보러갔다. 시험은 정해진 시간대로 0805에 시작했다. 시작후 약 10여분간 시험감독이 끊임 없이 말을 걸어서 혼란스러웠다. "이런걸 떨어지고도 사람이냐" 라는둥 계속해서 부정적인 말을 쏟아냈다. 꾸욱 참고 시험을 보는데 솔직히 듣기 평가 때도 그러니 화가났다. 듣기 평가도 계속 임의로 넘기고 중요한 순간에 워드작업을 하며 소음을 만들었다.

      어쨌든 시험은 끝났다. 시험지를 제출하는데 한 훈련병에게 버럭 버럭 화를 냈다. 이유는 시험지에 끄적인 흔적을 남겨서 그랬다. 시험지와 볼펜을 훈련병에게 던지며 말을 거칠게 했다. 사전에 지시사항을 충분히 고지했음에도 그런건 잘못이지만 조금 과한 반응이 아닌가 싶었다. 시험이 끝나면 홀가분할줄 알았으나 영찝찝하게 봐서 그런걸까 후련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듣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이게 단기간 내에 늘 수 있는게 아니니 마음을 비웠다. 찝찝한 마음을 안은채로 숙소로 올라갔다.

      이제 자대배치와 수료식만 남았기에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숙소에서 쉬고 있던중 갑작스레 집합명령이 떨어져 잠깐 집합을 했다. 아까 시험감독을 맡은 선생이 있어서 혹시 결과가 나왔는지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닌 그렇게 자신이 없냐?" 뿐이였다. 모든 훈련병들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선생이기에 당연히 좋은 말은 못듣겠거니 했는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훈련병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미친개였다. 아무튼, 욕을 한바가지 하더니 합불여부에 대해 알려줬다. 결과는 불합격이였다. 제일 걱정하던 체력 테스트는 통과했는데 이 시험 하나 때문에 KTA에서 유급을 하게 생겼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루종일 울적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다. 길게만 느껴지던 KTA에서의 생활이 내일이면 마무리 된다. 논산 분대원들과 나름 소소한 회포를 풀기 위해 방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우리 분대원 중에선 나와 다른 녀석 빼고는 전부 통과했기 때문에 분대원들이 나를 위로해줬다. 분대원들과 놀고 있던중, 가장 나중에 합류한 분대원이 나더러 홀드오버(유급인원;Hold Over)가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 오피셜하게 들은게 아니라서 최대한 마음을 비웠다. 괜히 기대했다간 더 상처만 받을것 같았다.

     


      아침 PT가 사라져서 잠을 6시까지 잘 수 있다. 논산에 있을 땐 6시 기상이 정신나간 소리 같았는데 요즘은 이 시간에 일어날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람은 정말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생물이다. 아침식사를 먹고 돌아와서 수료식 리허설을 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도 앞의 홀드오버 기수들이 나를 안부르길래 어제 분대원이 알려준 말이 진짜인줄 알았다. 예행 연습을 한창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군 중사가 나더러 왜 그 자리에 있냐며 홀드오버가 모여 있는 자리로 데려갔다. 홀드오버 자리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KTA 기간병이 다가와 귓속말로 '너희 구제 되었으니까 아까 그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어안이 벙벙한채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인 것인가. 수료식 전까진 누구의 말도 믿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저녁 먹기 전까지 리허설을 진행했다. 저녁을 먹고 잠시 강당에 집합했다. 이름과 계급장이 붙은 모자를 받고 군복에 붙이는 패치들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카투사 수료증도 받았다. 이거 받을라고 굴렀구나 어쨌든 통과했으니 마음 한켠은 뿌듯했다. 수료증을 보고 이제 확정적으로 유급인원 사실이 아니란 의미로 받아들여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3주라는 기간동안 고생한게 주마등 처럼 스쳐갔다.

      강당에서 미군 교관이 남은 시간동안 계속 점호를 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점호를 하는 동안 방 검사도 할것인데 평소와 달리 더욱 철저히 할거라 신신당부를 했다. 청소를 하고 있던중 한국군 중사와 면담이 잡혀서 내려갔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와서 짐정리와 방청소를 했다. 논산 때와 달리 보급 받은 물건들이 많지 않았던터라 짐정리는 순조롭게 끝났다. 잠잘때 필요한 옷가지들을 제외하곤 전부 치웠다. 유급이란 제도와 건강상태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드디어 끝이 보인다.


      드디어 길었던 KTA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어젯 저녁 강당에서 미군 교관이 말한대로 새벽4시부터 침대보, 이불 그리고 배게 커버를 벗겨서 수거하는 작업을 했다. 방에서 짐을 들고 나가기 전 방을 한번더 점검했다. 혹여나 두고 가는 물건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 그랬다. 무거운 도플백을 앞뒤로 한개씩 매고 1층으로 내려가서 대기했다. 이제 이곳을 떠난다니 기웁ㄴ이 좋으면서도 오묘했다. 시원섭섭 하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같다. 대기하는 동안 논산 분대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눴다.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 자대를 어디로 가게될지 몰라서 긴장했다.

      또다시 예행연습을 했다. 연습은 수료식 시작 직전까지 계속 되었다. 지난 며칠간의 연습과 다른점이 있다면 오늘은 군악대가 추가된 점이다. 악기의 소리가 너무커서 노래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묻혔다. 9시30분부터 행사가 시작 되었다. 처음에 목사님이 얘길하고 주임원사님이 얘길했다. 이후 카투사 복무신조를 다같이 외쳤다. 수료식을 마치고 시상식을 했는데 받는 인원들이 많이 부러웠다. 시상을 끝으로 내빈들은 전부 나가고 카투사와 간부들만 남아서 자대배치 추첨을 했다. 처음엔 가배치를 하면서 어떤지 보여주고 직후 배치 프로그램을 돌렸다.

      가배치 때 스크롤을 너무 빨리 내려서 내 이름을 제대로 확인 못했다. 진짜 자대배치를 하고 보니 평택의 행정병으로 배치된 것 같았다. 배치가 끝나고 점심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훈련소 디팩 밥을 먹었다. 다시 강당으로 돌아와서 내 자대와 특기를 확인했다. 논산 분대원들끼리 모여 각자 어디로 가는지 대화를 나눴다. 부대이름만 나와 있어서 어디로 갈지는 예측 불허였다. 유급인원들과는 식사와 얘기도 못하고 아쉬웠다. 12시30분부터는 짐들을 AREA 순으로 분류했다. AREA의 개념은 잘 모르겠지만 이걸로 지역이 나뉘는듯 했다. AREA는 1부터 4까지 총 4개로 구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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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A 인조잔디

      12시30분부터 13시30분까지 훈련소 인조잔디에서 대기했다. 하나둘씩 사라지는 인원들을 부러워 하다가 어느덧 나를 인솔하러 온 선임 카투사들을 따라 차량에 짐을 넣고 차에 올랐다. 평택기지가 여의도 면적의 6배라고 들어서 과연 어디로 갈지 설렜다. 차를 한동안 몰줄 알았는데 3분 이내에 도착했다. 평소 훈련소에서 이용했던 디팩 앞의 배럭이 내 건물이였다. 새로운 환경으로 가나 싶었는데 조금 당황했다. 짐은 잠깐 차에 둔 상태로 근무지에 들렀다. 거기서 인적사항을 영어로 기재하고 내가 근무하게 될 부대패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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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카투사 가슴 뱃지

      시니어 카투사(시카;Senior Katusa;분대장)의 안내에 따라 내 방에 짐을 풀고 다시 나왔다. 한국군 행정반에 들러 인적사항 서류를 작성하고 인터넷 중독 수준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직급인 '지원대장'님과 잠시 면담을 했다. 불편한 점이 없냐는 말에 요로결석에 대한 얘기를 하고 다음날 수술일자를 잡으라고 도와주셨다. 핸드폰이 없었기에 시카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시키는 일만 했는데 어느새 시간은 17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디팩에서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청소를 했다. 20시40분까지 청소를 하다가 45분부터는 점호를 하러 내려갔다. 거기서 신병소개를 했다. 부대인원은 총 60명이라 선임들 이름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자대배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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