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축구 유학생

2022. 7. 11. 08:00내 생각/어쩌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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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각자의 사연으로 베를린에서 여러 유학생들을 만났다. 그중 열에 아홉은 예술계였고 나머지도 대부분 공대생이었다. 여기서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과생들은 가뭄에 콩 나듯 적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가장 독특했던 건 간간힌 보이던 축구 유학생들이다. 그들과 얘기를 해보면 역시나 당시에 함부르크에서 뛰던 손흥민 선수의 성공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인들도 손흥민 드림(Dream)을 꿈꾸며 왔다고 했다. 2년간 지내며 이런 사례를 5명 정도 봤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라 기억나는 건 둘뿐이다.

    분데스리가 하부리거

    분데스리가-로고가-들어간-공-사진
    분데스리가 로고가 들어간 공

      분데스리가의 하부리그에서 뛰던 사람은 인상 깊었다. 만났던 사람 중 유일하게 선수 생활을 해서 그렇다. 또한 그는 축구 때문에 몸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유학생들끼리 바비큐 그릴을 할 때도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독일 생활 3개월 차로 그 사람과 비슷했다. 근데 독일어를 훨씬 잘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현지인 선수들과 생활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의외로 축구에 관한 답변은 시원치 않았다. 어떻게 하면 공을 잘 감아 찰 수 있는지? 혹은 달리기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그냥 하면 된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 남겼다.

    아버지와 온 축구 유학생

    2011 함부르크 시절 훈련하는 손웅정, 손흥민 출처: 중앙포토

      손흥민 선수가 아버지와 함께 훈련을 하고 늘 붙어 다닌 것처럼, 똑같이 온 부자(父子)가 있었다. 축구 선수가 되길 희망하는 아들은 어려서 그런지 숫기가 없어서 그와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본인이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생계를 다 포기하고 부자가 함께 독일 축구 유학행을 택했다고 들었다. 같이 셰어하우스에서 살았기에 그들의 하루 일과를 볼 수 있었다. 둘은 늘 새벽부터 사라졌고 밥시간 때만 잠시 얼굴을 비췄다.

      둘의 일상은 축구 그 자체였다. 밥 먹을 때도 발에는 축구공을 드리블하면서 다니고, 화장실을 가거나 집안에서 돌아다닐 일이 있어도 항상 오른발엔 축구공을 끼고 다녔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하는 게임도 축구게임인 피파나 위닝뿐이었다. 두 사람 피부가 다 까맣게 탈 때까지 축구를 하고 돌아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이 입단 테스트를 보러 다녔다. 처음에는 베를린 팀을 돌고 잘 안 풀렸는지 나중엔 다른 도시들을 전전했다. 6개월 간의 노력에도 성과가 없었는지 둘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근황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지 조만간 10년이 된다. 가끔 그 시절의 경험과 사람을 곱씹어 생각해보곤 한다. 이번에는 손흥민 선수를 보다가 갑자기 내가 봤던 축구 유학생들이 뭐하고 지내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국내 K-리그에서도 검색이 안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FM(Football Manager)이란 게임에서도 검색을 해봤으나 나오질 않았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둘 다 다른 일을 하거나 은퇴한 게 아닐까 싶다. 손흥민 드림(Dream)이란 게 참 어려운 거구나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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