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왕릉들

2022. 6. 21. 08:00도시 이야기/도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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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축학개론』 포스터

    머리말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서울에서 보냈기에 우리는 서울시에서 옛 왕가사람들의 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헌릉,선릉, 정릉, 태릉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선릉과 태릉은 지하철 역명으로 지정 되어 있어 우리에게 더욱 익숙하다. 하지만 어렴풋이 왕가의 무덤이라는 것만 알고 있고 각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 동안, 남자들의 잊혀진 첫사랑을 떠오르게 만들었던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정릉이 등장한다. 극중에서 건축학개론 담당교수가 수지에게 정릉이 누구의 능이냐는 질문을 하자 답을 못해 해매는 장면이 나온다. 부끄럽지만 해당 장면을 보며 나도 답을 하지 못하고 전혀 상관없는 선정릉을 생각했다.

    정릉(貞陵)

     

    신덕왕후 정릉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정릉은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다. 원래 도성 내부인 중구 정동에 있던 무덤인데 1409년 태종의 명령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이장 되었다. 한양의 중심지에서 외곽으로 옮겨진 이유는 계모 신덕왕후에 대한 이방원의 증오심과 경계심 때문에 생긴 일이다.

      계모에 대한 증오심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은 정동에 있는 묘를 현재의 정릉동으로 강제이장 시키고 더 나아가 능에서 묘로 격하했다. 또한 정릉에 있던 석물들을 청계천 다리 공사의 재료로 사용했다. 오늘 날에도 청계천을 보면 간간히 화려한 돌들이 보이는데 정릉에서 가져온 돌들이다.

    정릉(靖陵)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과 발음이 같다. 하지만 정반대의 장소에 위치한다. 조선의 11대왕 중종이 안장된 정릉은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조선 9대왕인 성종의 선릉과 같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선정릉(宣靖陵)이라고 불리거나 중종왕릉이라 일컫기도 한다.

      중종의 릉도 신덕왕후의 릉처럼 이장이 된 사례다. 본래의 위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해 있었으나 문정왕후가 해당 장소가 지리설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선왕이자 부왕이 있는 성종이 있는 선릉의 울타리로 옮겨졌다. 선릉은 왕후들과 함께 안장 되었지만 정릉은 중종 단독으로 안장 되었기에 왕후들의 능은 모두 다른 지역에 안장 되었다.

      서울시가 성장함에 따라 강남 도시화 열풍이 일었는데 다행히도 성종의 선릉과 함께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개발화의 영향은 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위성지도를 통해 보면 해당 지역은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곳으로 남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릉(宣陵)

      조선 9대 왕 성종이 1494년에 승하하면서 경기도 광주군에 안장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1530년에 계비인 정현왕후가 승하하며 현재의 선릉이 만들어졌고 같이 성종도 같이 이장 되었다. 이로부터 약 15년 뒤인 1544년에 중종이 승하하면서 바로 한 울타리에 있는 왕릉인 정릉에 안장되어 선정릉 및 삼릉이 되었다. 1975년부터 시작된 강남구 개발로 인해 선릉 주변일대가 개발 되었는데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덕분에 지금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왕릉이 되었다.

      근처에 봉은사라는 절이 사람들한테 익숙할텐데 조선시대 때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사찰이였다. 능침사찰이라 칭해지며 역할 덕분에 많은 땅을 하사 받았다. 그래서 절의 이름도 '은혜를 받든다'라는 의미를 지닌 봉은(奉恩)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억불숭유 정책으로 조선 유생들의 집중 견제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태릉(泰陵)

    문정왕후의 태릉

      태릉이란 지명은 우리에게 있어 태릉선수촌으로 익숙하다. 태릉은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에 위치하고 앞서 언급한 조선 11대 왕 중종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정왕후의 무덤이다. 문정왕후는 생전 본인이 죽으면 중종 옆에 묻히고 싶다고 하였는데 중종이 선릉 옆으로 이장 됨에 따라 본인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선정릉은 도굴을 당해 현재 빈묘소이지만 태릉은 워낙 단단하여 도굴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일부 시설이 파괴되어 1994년에 다시 복원 되었다. 태릉은 여타 다른 왕비의 단릉과 달리 웅장한 능으로 조성 당시 문정왕후의 권세가 얼마나 컷는지를 짐작케 한다.

    월릉IC

    월릉IC와 태릉입구역

      6호선 태릉입구역 근처에는 월릉IC라는 월릉교가 있다. 해당 지역을 차로 지나면서 월릉은 또 누구의 능인지 의문점을 가졌다. 주변에 태릉이 있기에 이곳도 주인이 있는 무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월릉은 무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지명이다. 노원구에 위치한 월계동과 공릉동에서 한 글자씩만 따와 만들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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