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의 죽음

2022. 6. 6. 08:00내 생각/어쩌다 독일

    728x90
    반응형

    고장난-밥솥-사진
    사망한 밥솥

    밥 없이 못 살아

      독일에서 처음 지내며 가장 힘들었던 건 밥이었다. 현지 음식의 문제라기 보단 진짜 쌀밥 없이는 허기가 달래지지 않았다. 어학원 같은 반인 한국인 친구들은 아침을 빵으로 잘만 해결하던데 난 도저히 맞질 않았다.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니 백인 친구들은 모두 빵으로 아침을 해결했고 중동이나 아시아 쪽 사람들만 우리처럼 쌀을 먹었다. 빵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려면 4개 정도는 먹어야 괜찮았는데 그것도 결국 오전 10시면 다 소화가 돼서 배고팠다.

      식사로 밥을 너무 먹고 싶어서 급한 대로 냄비밥을 하고 남은 밥들은 지퍼팩에 소분하여 냉동보관했다. 이것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귀찮아질 무렵 베를린 리포트에 누군가 올린 전기밥솥 무료 나눔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을 읽고 연락을 드렸더니 내가 첫 번째 연락 자라며 일정을 조율했다. 약속 장소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당일에 물건을 나눔 받았다. 고마운 마음에 과자와 음료를 조금 사서 드리고 왔다.

    밥솥은 역시 쿠쿠

      난생처음으로 유명 브랜드가 아닌 밥솥을 사용했다. 밥솥의 디자인은 예전 아이폰4처럼 직관적이었다. 취사 버튼 하나와 전원이 들어왔는지 알려주는 LED가 전부였다. 아무쪼록 오래간만에 어설픈 냄비밥이 아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확실히 냄비밥보다는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밥솥으로 지어먹는 쌀밥이 훨씬 더 맛있었다. 한동안 요리를 하면서 딱 먹을 량만큼 의 쌀을 넣어 밥을 지었다.

      어느새 이 과정이 귀찮아져서 한 번에 많은량의 쌀을 넣은 적이있다. 취사는 잘 되었다. 그러나 밥솥의 보존력이 문제였다. 3일 뒤에 밥솥에 있던 밥이 전부 쉬어버렸다. 살면서 밥솥 안에 있는 밥이 상한걸 본적이 없는데 나름 신선한 경험이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브랜드 밥솥을 선호하나 보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로 한번에 밥을 많이 하고 예전처럼 냉동 보관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밥솥의 죽음

      어김없이 식사시간이 되어 밥솥에 쌀과 물을 넣고 취사 버튼을 눌렀다. 조리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약간 인공적인 냄새였는데 마치 누군가 플라스틱을 태우는 냄새 같았다. 진원지를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데 원인은 밥솥이었다. 본능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플러그부터 뽑았다. 그다음엔 밥솥의 뚜껑을 열었다. 그렇다. 밥솥이 녹고 있어서 나던 냄새였다.

      어떻게 된 건가 보니 밥솥 옆에 놓인 철판이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원래 밥솥의 내솥을 넣은 뒤 그 위에 철판을 넣고 취사를 해야 하는 구조인데 녀석을 깜빡했나 보다. 이미 밥솥의 윗면은 다 녹아내렸고 소생이 불가능했다. 나의 행복했던 6개월간의 쌀밥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어떻게 하면 괜찮은 밥솥을 구할까 싶었는데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친구가 있어서 밥솥을 얻게 되었다. 해외에서 오래 지낼 거면 밥솥은 필수다.


    728x90
    반응형

    '내 생각 > 어쩌다 독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를린 지하철 역명 2부  (0) 2022.06.08
    베를린 지하철 역명 1부  (0) 2022.06.07
    독일은 왜 축구를 잘할까  (0) 2022.05.31
    베를린 어디서 살것인가?  (0) 2022.05.30
    베를린에서 집 구하기  (0) 2022.05.28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