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의 유산

2022. 6. 10. 08:00내 생각/어쩌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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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국회의사당-사진
    베를린 독일 국회의사당

    들어가며

      살면서 저마다의 이유로 인생에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들이 있을 것이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나란 사람에게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건 혹은 경험은 단언컨대 독일 생활이다. 예수의 탄생이 서방권 국가에 영향력을 미쳐, 역사에서 시간을 표시할 때 BC, AC로 표현하듯 내 삶은 BD(Before Deutschland), AD(After Deutschland)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2년이 채 되지않는 시간이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나의 많은 것을 바뀌게 해 줬다.

      독일 생활을 접고 다시 국내로 돌아온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구텐탁(Guten Tag)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후회하지 않냐는 것이다. 조금만 더 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겠냐며 오히려 나보다 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원대한 포부와 꿈을 가지고 갔던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으니까. 이런 후회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4년여 정도가 걸렸다. 그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거라 생각하여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인간 관계

      '혹시 사업하신 적 있나요?'라는 말을 직업상담사님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 40대 혹은 50대에서나 보이는 '타인에 대한 신뢰' 점수가 낮게 나와서 물어본 거라 하셨다. 특히,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잘 안 믿기 시작한 계기는 독일에서 집 문제로 사기를 몇 번 당한 적이 있어서 그랬다. 파독 광부나 간호사분들이 옛날에 해외살이를 하며 고생한 적이 있을 테니 적어도 사기는 안치리라 생각했으나 크나큰 오산이었다. 부모나 연고가 없이 온 갓 성인이 된 나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한 동안은 한국인들로부터 상처를 받아 모든 한국인과의 인연을 끊고 지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너무 과한 처사였다. 나도 사람인지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는 상황이 오기 마련인데 이를 간과했다. 이를 토대로 지금은 예전처럼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사람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가급적이면 좋게 넘어가려고 한다. 너무 날 서게 사람을 끊어내고 그런 것도 좀 정이 없다. 나라고 실수를 안 할까.

    신경 끄기의 기술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남의 시선 과잉이었다. 혼자서 옷을 사러도 못 가고, 영화관에도 못 가고, 바깥에서 혼자 밥도 잘 못 먹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늘 신경 쓰면서 살았다. 그러다 독일에서 살며 이런게 철저히 부서졌다. 어학원이 유명한 동성애 거리에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애정행각을 하는 여성 커플들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승객들을 보며 사람들이 정말로 생각보다 남한테 관심이 없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때부턴 남의 시선을 딱히 의식하지 않으며 지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혼자 어디든 잘 다닌다. 가고 싶은 곳이나 보고 싶은 곳이 꼭 생기면 홀로 시간을 내어 다녀온다. 그 장소에서 사진도 찍고 근처 식당에 들러 혼밥도 하고 볼일을 마친 뒤 아무 일 없듯 집에 돌아온다. 요즘은 혼자 하기의 수위를 더 높였다. 혼자 놀이공원에 다녀온 적도 있다. 과거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서 야 혼밥을 했을 것 같다.

    축구력 상승

      학창 시절부터 체육시간을 싫어했다. 뭣하러 더운데 땀을 흘리며, 먼지를 마시면서 밖을 뛰어다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과거엔 그랬다. 학창 시절에 공이라도 많이 찼으면 몸이 유연했을 텐데 몸치 중에 몸치였다. 당연히 구기 종목도 잼병이었다. 그나마 키 때문에 축구할 땐 골키퍼를 서고, 농구할 땐 가끔 친구들이 껴주곤 했다. 주변 친rn들 때문에 어쩌다 보니 중학교 3학년부터 축구에 빠지게 되었고 축구의 매력에 잠겨 독일행 유학까지 오르게 되었다.

      다양한 축구 영상물을 접하며 나는 언제쯤 선수들의 절반만큼이라도 플레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름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많이 뛰어보는 것이였다. 동네에서 간간히 공을 차는 사람들이 있으면 우선 모임이 홀수인지 확인부터 했다홀수면 보통 껴주니까 그랬다여러 인종과 국가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실력이 늘었다예전엔 붙박이 골키퍼였지만 독일 생활 이후로 필드도 뛰는 쾌거를 이루었다잘은 아니여도 보통만 해도 내심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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