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1. 08:00ㆍ내 생각/수필
1. 나는 가성비충이었다 머리말
국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연상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가성비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굳어져, 지난 몇 년 전부터는 가성비를 좋아하는 가성비충 더 나아가 국밥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해당 단어가 유행하던 당시의 나도 무엇을 하든 가성비를 따졌기 때문에 일종의 가성비충 중 하나였다. 일련의 다양한 경험들을 몸소 겪으며 이런 성향을 점점 내려두기 시작했다.
혼자 길을 걷다 문득, 가성비에 대한 소재가 생각났다. 가성비와 관련한 수필을 언젠가 한 번쯤은 써보고 싶었는데 생각난 김에 글을 정리하고 구성했다. 지금도 물론 가성비를 어느 정도 따지긴 하지만 예전만큼 집착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번 글에서는 어쩌다가 가성비 충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달라졌는지 써보려 한다. 궁금한 사람들은 끝까지 글을 읽어주면 좋겠고, 아니라면 지금 뒤로 돌아가서 다른 글을 감상하면 좋겠다.
2. 가성비충이 된 계기
사람마다 살면서 본인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건이 존재할 것이다. 내 경우에는 성인이 된 직후 무렵 독일에서 약 2년간 살았던 경험이 여러모로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유학생 시절의 경험이 나를 가성비 충으로 만들었다. 당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혼자서 생활했기에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가정 형편도 알고, 부모님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일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선 최대한 아끼려고 했다.
독일 유학생 시절 가장 아낄 수 있었던 부분은 식비와 교통비였다. 독일의 생활 물가가 워낙 저렴했던터라 최대한 아끼며 생활했다. 그리하여 책정한 한 달 식비는 40유로였다. 우리나라에 노브랜드가 있듯이 독일에는 Kaufland(카우프란트)라는 곳이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이었다. 외식을 하고 싶은 경우가 있을 땐 간간히 잡지 부록을 딸려오는 맥도날드나 버거킹의 할인 쿠폰을 오려서 사 먹곤 했다. 교통비의 경우 학생 할인을 받아 78유로 정도에 마무리했다. 일반적으로 130유로가 넘는데 40% 이상 할인된 금액이었다.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줄이고 나니 한달에 사용하는 모든 걸 종합해 보니 한화로 80만 원 정도 소비했다. 유학생치곤 그래도 적은 편에 속했다. 아낄 수 있는 건 최대한 아끼고, 종교 시설 및 단체에서 그릴 파티를 할 경우 언제든 찾아갔다. 입장료가 있다 하더라도 기꺼이 지불하고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고 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어려서 뭘 잘 몰랐으니 남들 시선을 신경 안 쓰고 억척스럽게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2년 정도를 홀로 생활하고 나니 그 누구보다도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이 되었다.
3. 가성비충 탈피
습관처럼 굳어진 행동들을 바꾸는 것은 참 어렵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나의 가성비를 따지는 행동은 습관처럼 굳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최소 2년에서 3년 정도는 이런 생활 태도를 유지했던 것 같다. 가치관이 바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옷, 음식 그리고 여행에 큰 영향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가성비와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이제부터 각, 요인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써보려 한다.
(1) 옷
허영심에 대한 경계심이 남들 보다 강했다. 명품을 사치재로 생각하여 고가의 지갑, 옷, 액세서리 등 명품과 관련해 소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옷이라는 건 단지 남들에게 눈살 찌푸려지지 않을 정도로 걸치면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옷에 대한 투자를 그다지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늘 저렴한 옷을 여러 벌 구매하여 돌려 입곤 했다.
한 동안 위와 같은 소비 패턴을 고집했는데, 옷이 너무 쉽게 망가지고 볼품 없어지는 것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오래 입을 만한 좋은 옷을 구매하여 오래 입는 것이 더욱 현명한 소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성비를 따지며 옷을 구매하더라도 결국, 저렴한 내구성으로 다시 구매하는 것보다 이게 더 현명해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 무렵 실행에 옮겼고,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2) 음식
음식에 큰 돈을 소비하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는 아마도 독일에서 엄청나게 절약하며 지냈던 것과 흔히 말하는 막입의 소유자라 그런 것 같다. 어디서 먹든, 음식이야 속에 들어가면 거기서 거기일 텐데 굳이 큰돈을 소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늘 하고 지냈었다. 나만의 통념이 깨진 것은 꽤나 높은 수준들의 음식을 먹으며 깨지게 되었다.
일련의 기회들을 통해 좋은 식당을 방문해 보니, 사람들이 단순 음식을 소비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느꼈다. 음식도 물론이고,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대접과 고급 식당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방문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막입을 가진 나조차 고급 음식점에서 음식이 이토록 맛있을 수 있는 것이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여행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본인의 경우 20대 초반에 정말 지갑이 얇았다. 그래서인지 여행이라는 행위가 사치로 느껴졌다. 또한, 어느정도 외국 사대주의적 성향도 있었기 때문에 국내 여행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여행을 가서 새로움을 느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도 크게 믿지 않았다. 그냥, 여행 다녀왔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말하는 인사치레 정도의 말이라 치부했다.
의외로 나의 신화가 깨지게 되었던 것은, 내일로 여행과 혼자 방문했던 일본여행 덕분이다. 신입생 시절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 마자 내일로 기차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기차를 통해 처음으로 홀로 경상도 지역과 호남지역을 돌며 국내 여행지도 볼거리가 참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을 몸소 경험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그동안 내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살았음을 느꼈다.
일본 여행의 경우, 큰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단지, 그동안 못 만났던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다녀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며 친구들이 내게 해준 환대 덕분에 당시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위와 같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여행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신화가 산산조각 났다.
3. 가성비충 현재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며, 지금은 가성비를 따진다기 보단 가심비를 따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너무 가격에 집착하다 보니 더 큰 걸 놓치는 것 같아 홀로 내린 결정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심비라는 말이 생소할 수 있다. 가심비는 가격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일컫는 말이며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이제는 가심비란 말처럼, 가격이라는 수치적 틀에 박힌 표현을 넘어 얼마나 나에게 만족되는 지를 따지는 사람이 되었다. 돈을 소비함에 있어서, 내게 얼마나 큰 효용감을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었다.
누군가는 가심비를 가성비의 반대되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무엇인가를 구매할 때 기존의 제품보다 엄청 뛰어난 성능적 만족을 주지 않으면 바꾸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짧게 표현하자면 심리적 가성비를 따지는 게 맞는 표현이다. 아무쪼록, 요즘은 필요한 것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얼마나 큰 만족도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 생각하며 소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가치들이 돈으로 환산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이런 것들로 계속 생각을 집중하다 보니 감정이 메마른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가성비 하나로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이만 글을 줄여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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