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4. 08:00ㆍ내 생각/수필
반지하 생활을 하며
우연한 계기로 반지하에 개인 공간이 생겼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모종삽을 들고 아지트를 만들고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분이 떠올랐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그런가 보다. 평생의 주거생활 대부분을 아파트에서 지내온 나로서 반지하 생활이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내 경험을 간략히 적어보려 한다.
골목길
가장 넓은 창을 가진 방이 도로와 인접해 있다. 대부분의 반지하들이 그렇듯이 단독주택과 달리 건물과 도로 사이를 막아주는 담장이 없다. 누군가가 걸어가며 통화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모든 내용들이 들린다. 특히 근처 초등학생들의 하교시간이 조금 지나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공을 차거나 자기들만의 이야기 꽃을 피운다. 학원을 가야 해서 그런지 1시간 정도면 이내 소음은 사라진다.
사실 골목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소위 말하는 낙후된 지역일수록 길거리가 지저분하고 관리가 안되어서 그랬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골목길은 재건축이나 밀려야 할 곳이라기 보단 누군가에게는 유년시절의 추억이 될 수 있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건축 구역이 확정되어 을씨년스러운 골목길을 보면 늘 재탄생되어야 하는 공간이라 봤는데 인식이 바뀌었다.
분리수거
항상 아파트에서 공동으로 쓰레기 버리는 것에 익숙했다. 주말에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면 아주 가끔은 아는 이웃을 만나 목례와 함께 짧은 인사치레 대화를 나누곤 서로의 일에 몰두했다. 이곳은 아파트처럼 거주자들이 공동으로 쓰레기를 모으는 공간이 없다. 골목에 있는 모든 집들의 상황도 마찬 가지다. 처음 왔을 때 어떻게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나 난처했다. 주변에 있는 집들을 살펴보고는 똑같이 따라 했다.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는 각각의 종량제 봉투에 동봉하여 건물의 공동현관 대문에 가져다 둔다. 다른 재활용 쓰레기들은 규격화된 봉투가 없다.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가져온 비닐봉지에 플라스틱을 모으기도 하고 종이봉투에 종이류들을 뭉쳐서 종량제 봉투 옆에 나란히 둔다. 그러면 오전에 쓰레기 용역업체에서 가져간다. 평일에만 운행해서 일요일 저녁에 근처를 걸으면 모든 대문 앞엔 쓰레기로 가득하다. 어렵겠지만 아파트처럼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도시 속 동물들
흔히 도심 속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을 떠올리면 비둘기, 고양이, 쥐 정도가 있다. 비둘기는 광장이나 공원 혹은 1호선 승강장에서 심심치 않게 자태를 뽐낸다. 고양이들은 빌라나 단독주택들이 밀집한 곳에서 찾아보기 쉽다. 쥐는 아주 가끔 보이는데 재빨리 하수구로 숨어서 정확한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다. 내가 지내는 곳은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곳이라 그런지 햇살이 따사로운 점심쯤 어디선가 싸우는 날카로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좀 스트레스다. 그래서 이어폰을 낀다.
쥐를 잘 잡는 고양이들이 많으니 살면서 쥐의 모습을 한 번쯤 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녀석을 마주했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볼법한 족제비를 만났다. 작년 여름에 작은방 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창가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처음엔 환풍구에 무엇인가가 걸려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막상 방에 가보니 소리의 진원은 창가였다. 창문을 열어 확인해 보니 창가 바로 옆에 위치한 계단을 넘으려는 족제비의 몸부림 소리였다. 갈색의 긴 몸을 가진 녀석이었다. 내가 와서 놀랬는지 3번 정도 더 점프를 하더니 계단을 넘어 사라졌다.
맺음말
재건축의 영향으로 올해에는 이곳이 사라진다 들었다. 길면 길다고 할 수 있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반지하는 내게 사색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모임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휴식의 공간이기도 했다. 많은 추억들을 쌓게 해 준 아지트인데 허물게 되면 상실감이 클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 다양한 추억들을 이곳에서 만들고 경험하고 싶다. 남는 게 사진이란 말이 있으니 사진도 많이 찍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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