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5. 08:00ㆍ카투사 일기
합격
어학성적을 점수대 구간별로 나눠서 인원 선발을 한다고 들었다. 토익을 기준으로 예를 들면 780~850점, 850점~900점, 900점~950점 등으로 말이다. 고득점을 할수록 경쟁자들이 줄어드니 적어도 900점은 되어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원서를 넣을 때까지 원하던 900점은 넘기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은 갈수록 커졌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롯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발표는 11월이었기에 남은 두 달 동안 일상생활을 하며 지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합격률이 그다지 높지 않으니까 지금부터라도 군대에 지원하라고 들었다. 다행히도 대학생 신분이라서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그날도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였다.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그토록 원하던 카투사 합격 문자였다.
정말이지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카투사란 집단은 내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내가 이 집단에 들어가게 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우선 나보다 더 마음을 졸이고 계시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합격이란 말을 하니 조그맣게 떨리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고 친구들에게도 별거 아닌 자랑을 했다. 드디어 군대라는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 나만 빼고 다 전역을 했기에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머리가 복잡했다. 부모님도 늘 군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혹은 할거 없으면 군대부터 다녀오란 말을 종종 하셨다.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제 군대만 다녀오면 이런 걱정도 눈 녹듯 사라지리라.
입대 전까지
제발 붙여만 달라는 심보로 입대일을 12월로 잡았다. 1월부터 12월까지 원하는 달에 지원할 수 있는데 그동안의 통계치를 봤을때 항상 12월이 낮았기에 꼽았다. 입대까지 1년의 시간이 남았다. 그 동안 뭘 하면서 지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학기 중엔 늘 그랬듯이 학교를 다니며 학업에 매진했다. 나머지 시간은 독서에 할애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게 이 시기다. 매주 학교에서 5권의 책을 빌려와서 읽고 담주에 반납하고를 반복했다. 입대 직전에 대여 기록을 확인해보니 얼추 100권을 넘게 읽었다. 내 삶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시기였다.
방학 때에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다. 미필자는 10년짜리 여권을 만드는 게 불가능해서 입대일 직전의 1년짜리 단기 여권을 만들었다. 애매한 여권 만료일 때문에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타국에서 입국을 잘 받아줬다. 군입대를 앞두니 나를 위한 소비를 가장 많이 한 시기였다. 그동안 못 봤던 외국인 친구들도 다시 만나니 옛 추억에 빠져 들었다. 외국인 친구들과 만나 얘기를 하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인으로서 군대를 가는 2년이 참 크구나 싶었다. 보통 친구들은 군대에 안 가니 결혼을 하든 사회생활 시작 시기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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